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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의 산악철도: 다르질링, 닐기리, 스리랑카 차밭의 철길

식민지 시대에 인도와 스리랑카의 산지로 놓인 세 철도가 차 산업과 어떤 관계였는지, 궤간이 왜 서로 다른지, 지금 철길 주변의 삶은 어떤지 살펴봅니다.

산으로 가기 위해 놓은 철도

19세기 남아시아의 영국인들은 두 가지 이유로 산지를 찾았습니다. 하나는 평지의 더위를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다르질링, 우티, 심라 같은 곳은 관리와 그 가족들이 더운 계절을 보내는 '힐 스테이션'이 되었고, 심라는 영국령 인도의 여름 수도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처음에는 커피, 나중에는 차를 재배할 농장 부지였습니다. 어느 쪽이든 교통이 필요했습니다. 산길을 오르는 수레는 느리고 비쌌기에, 1860년대부터 철도가 평지에서 능선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GONOM에는 이런 노선 세 곳의 운전실 영상이 있습니다. 다르질링 히말라야 철도는 서벵골주에서 동부 히말라야로 오르고, 닐기리 산악철도는 타밀나두주의 닐기리 구릉으로 오르며, 스리랑카의 본선(메인 라인)은 나누오야에서 캔디까지 섬의 고원 지대를 따라 내려옵니다. 세 노선은 수십 년 사이에 비슷한 이유로 건설되었지만, 선로의 폭부터 시작해 모습도 운행 방식도 크게 다릅니다.

다르질링: 차와 목재, 그리고 힐 카트 로드

동벵골 철도의 대리인이었던 프랭클린 프레스티지가 다르질링까지 철도를 놓자고 제안했고, 길랜더스 아버스넛 회사가 2피트 궤간으로 이를 건설했습니다. 철도는 1880년 쿠르세옹, 1881년 7월 다르질링에 닿았습니다. 노선은 원래 있던 산길인 힐 카트 로드를 따라 놓였고, 수십 년 동안 차와 목재와 사람을 실어 날랐습니다. 1910년 한 해에만 승객 17만 4천 명과 화물 4만 7천 톤을 수송했습니다. 노선 꼭대기 가까이 있는 조레방갈로는 한때 주변 다원에서 나온 차를 모아 캘커타로 내려보내던 집하지였습니다.

지금도 철도의 무대는 그 도로입니다. 긴 구간에서 선로가 차도 위에 깔려 있어 열차는 자동차, 트럭, 보행자와 길을 나누어 쓰며, 경적과 기적 소리가 거의 끊이지 않습니다. GONOM 영상에서 B형 증기기관차 802호는 소나다 근처에서 도로 보수 작업반 옆을 조심스럽게 지나고, 조레방갈로를 향해 교통 체증 사이를 헤쳐 나간 뒤, 해발 2,258m로 인도에서 가장 높은 역인 굼의 좁은 거리를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바타시아 루프를 돌아 다르질링으로 내려갑니다. 집과 가게 앞이 선로에 얼마나 바짝 붙어 있는지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닐기리: 오랜 기다림, 그리고 랙 레일

우티까지 가는 철도는 이미 1854년에 계획되었지만, 자금과 지형 문제로 수십 년 동안 미뤄졌습니다. 미터 궤간의 이 노선은 1899년 메투팔라얌에서 쿠누르까지 개통했고 1908년 우티에 닿았습니다. 칼라르와 쿠누르 사이는 경사가 12분의 1에 이르러 압트식 랙 레일을 쓰는데, 지금 인도에서 운행 중인 랙 철도는 이곳뿐입니다. X형 증기기관차는 대부분 스위스 빈터투어에서 만들어졌고, 가장 최근의 한 대는 2021년 골든록 공장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산불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지금은 상당수가 석탄 대신 기름을 땝니다.

GONOM 영상은 칼라르 위쪽의 터널에서 출발해 랙 구간을 올라 러니미드까지 이어집니다. 도중에 더 이상 승객을 받지 않는 급수역 애덜리와, 기관차가 물을 넣는 동안 승객들이 매점에 들렀다가 긴 기적 소리를 듣고 돌아오곤 하는 신호소 힐그로브를 지납니다. 힐그로브를 지나면 비탈에 첫 차밭이 나타납니다. 남부철도는 지금도 양방향으로 정기 열차를 운행하며, 첸나이에서 오는 야간열차 닐라기리 익스프레스와 연결되도록 시간을 맞추고 있습니다. 관광용 나들이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여정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스리랑카: 커피가 먼저, 그다음은 차

실론에서 철도를 요구한 것은 유럽인 커피 농장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1842년부터 캔디와 콜롬보 항을 잇는 철도를 놓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첫 열차는 1864년 12월 콜롬보에서 암베푸사 방면으로 달렸고, 1867년 철길이 캔디에 닿았습니다. 1869년 직후부터 커피 녹병이라는 곰팡이 병이 농장을 휩쓸기 시작했고, 결국 차가 커피를 대신해 주요 농장 작물이 되었습니다. 철도는 이렇게 차의 고장이 된 산지로 계속 올라가 1874년 나왈라피티야, 1885년 나누오야, 그리고 1924년 마침내 바둘라에 이르렀습니다.

GONOM 영상이 담은 것이 바로 이 풍경입니다. M5B형 디젤기관차가 끄는 열차가 해발 약 1,613m의 나누오야에서 캔디까지 세 시간 반가량 내리막을 달립니다. 나누오야를 떠난 열차는 라델라, 그레이트웨스턴, 탈라와켈레를 지나며 차나무가 심긴 비탈 사이를 굽이굽이 내려갑니다. 출발 후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하톤은 아담스 피크로 가는 순례객들의 관문입니다. 이후 노선은 숲과 농장 사이를 내려가 마하웰리강 가의 나왈라피티야에 이르고, 14세기에 수도였던 감폴라를 지나 페라데니야 분기역과 캔디로 향합니다.

세 노선, 세 가지 궤간

세 노선은 선로 폭이 모두 다릅니다. 다르질링은 2피트, 즉 610mm이고, 닐기리는 미터 궤간이며, 스리랑카 본선은 인도의 간선과 같은 1,676mm 광궤를 씁니다. 이 선택에는 비용과 지형이 반영되었습니다. 인도 철도사에 따르면 간선에는 화물 수송과 안정성을 고려해 광궤를 택했고, 2피트나 2피트 6인치 노선은 험한 지형에서 더 싸고 빠르게 놓을 수 있었습니다. 닐기리 노선은 그 중간에 해당합니다.

스리랑카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광궤를 그대로 산지까지 끌고 올라가 계곡 비탈과 산등성이를 따라 꾸준히 고도를 높였기 때문에, 콜롬보에서 바둘라까지 궤간을 바꾸지 않고 열차가 다닙니다. 협궤가 산지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1903년부터 1948년까지는 나누오야에서 누와라엘리야와 라갈라로 가는 협궤 지선이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는 1990년 시작된 '유니게이지' 사업으로 많은 미터 궤간·협궤 노선이 광궤로 바뀌었지만, 닐기리 노선은 지금 모습 그대로 유지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장단점은 협궤를 다룬 가이드에서 설명합니다.

오늘날 철길을 따라 이어지는 삶

이 철도들은 어느 것도 관광 열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톤역은 12월부터 5월까지 이어지는 아담스 피크 순례철에 약 100만 명의 승객을 맞으며, 우다라타 메니케와 포디 메니케 같은 이름 붙은 열차들은 관광객과 함께 콜롬보, 캔디, 바둘라를 오가는 주민들을 태웁니다. 다르질링에서는 평지의 뉴잘파이구리와 산지를 잇는 정기 디젤 열차가 다니고, 다르질링에서 굼까지 바타시아 루프를 돌아 다녀오는 짧은 관광 열차가 방문객을 태우는데, 그중 일부는 증기기관차가 끕니다.

세 노선 모두 몬순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폭우가 산사태와 낙석을 일으켜 다르질링과 닐기리 노선이 때로 오랫동안 멈추기도 하며, 스리랑카의 높은 능선에는 구름과 안개가 자주 걸립니다. 영상을 보고 직접 타 보고 싶어지셨다면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시기를 피해 계획하시고, 떠나기 전에 운영사의 공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영상 속에서는 이 노선들을 움직이는 작은 것들, 곧 급수 정차와 역무원이 있는 역, 건널목, 그리고 정류장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GONOM에서 이 여정 보기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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